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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통치 체제와 경제정책

by 인포-한국사 2025. 1. 15.

고려시대는 918년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며 고려를 건국한 시점부터 시작되어 1392년 조선이 건국되기까지 약 475년 동안 이어진 중세 한국사의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큰 변화와 발전을 이루었으며, 한반도의 새로운 통합 질서를 확립한 시기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고려의 통치 체제와 경제정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화폐와 조직도

 

통치 체제

고려시대의 통치 체제는 중앙집권적 국가를 지향하며 점진적으로 정비되었습니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이후 다양한 세력의 통합을 위해 호족 연합적 성격을 띠며 출발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체계적인 제도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중앙 행정, 지방 행정, 군사 체계, 관리 등용 제도 등 여러 방면에서 정비되었으며, 유교적 이념과 불교적 정신이 함께 작용한 독특한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중앙 행정 체제는 2성 6부제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이는 중국 당나라의 제도를 참고하되, 실정에 맞게 변형한 것입니다. 2성은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말하며, 중서문하성은 국가의 주요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기구였고, 상서성은 이를 실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6부는 이, 호, 예, 병, 형, 공부로 나뉘어 각각 행정, 재정, 의례, 군사, 사법, 건축 및 산업 등을 담당했습니다. 왕권 강화를 위해 왕은 비서기관인 중추원을 설치하고, 왕명을 전달하거나 비밀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정책 감찰과 관료 통제를 위해 어사대와 삼사를 두어 행정 및 재정을 감시하고 균형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기구는 권력 분립적 요소를 보여주며, 왕권의 독주를 방지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도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방 행정은 전국을 5도 양계로 구분하여 운영하였습니다. 5도는 일반 행정 구역으로, 각 도 아래 주와 군·현이 배치되었으며, 도는 안찰사가, 군과 현은 지방관이 관하였습니다. 양계는 북방 국경 지역으로, 군사적 방어를 위해 병마사가 파견되었습니다. 이러한 지방 행정 체계는 중앙 정부가 전국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한 장치였습니다. 군사 체계 또한 중앙집권적 색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직되었습니다. 중앙군인 2군 6위는 왕실 경호와 수도 방위를 담당하였으며, 지방군은 주현군과 주진군으로 나뉘어 각 지역의 방위와 치안을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양계 지역의 주진군은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관료 등용은 과거제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제는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제도로, 문과·잡과·승과로 나뉘어 운영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중앙 정부는 호족 세력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진 관료 세력을 적극적으로 등용하며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경제정책

경제 정책은 국가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었으며, 특히 농업과 상업을 중심으로 한 발전을 목표로 했습니다. 농업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으며, 이를 통해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고, 상공업과 국제 무역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습니다. 먼저, 농업 중심을 기반으로 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초기부터 농민들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조세 제도를 정비했습니다. 주요 세금은 전세와 공물로 나뉘었으며, 전세는 주로 곡물로 징수되었고, 공물은 각 지역에서 특정 물품을 세금으로 납부하게 했습니다. 또한, 농업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양전 사업을 시행하여 토지의 크기와 경작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공정한 세금을 부과하고자 했습니다. 중기에는 토지의 분배와 세금 부과 방식에서 인정 전, 백정 전, 개정 전 등의 제도가 시행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가는 안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농민 보호 정책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특히 신라 말기의 호족들의 토지 장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농민들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전주(전지)의 정리와 토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그들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군역(병역) 대신에 조세로 대체하는 제도도 도입되어 농민의 부담을 덜어주려 했습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국내 상업과 외부와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초기부터 해상 무역을 통해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삼한통보와 동전은 상업 활동의 중요한 화폐 단위였으며, 화폐 경제가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또한, 시전이라는 상업 중심지를 만들어 상인들이 자유롭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특히 강진, 경주, 개성 등의 주요 도시에서는 상업이 활성화되었고, 수공업과 제조업이 발달하면서 도시 경제가 번성했습니다. 외환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으면서 대외 무역이 중요해졌습니다. 수은, 철, 직물 등을 송나라와 교역했으며, 이는 중요한 외화 자원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특히 동아시아 해상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여,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금 제도와 관리 체계의 정비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국가의 재정은 세금 징수와 관련된 행정 관리의 효율성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 감찰 제도와 중앙 및 지방 행정 체제를 정비하고, 부유한 귀족과 호족들이 세금을 회피하지 않도록 규제하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