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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 실제 존재했던 해적들

by 인포-한국사 2025.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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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는 한반도 고대사의 중심이자, 각국이 육지뿐만 아니라 해상에서도 군사·무역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해적을 조선 후기 ‘왜구’의 이미지로 기억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에도 해적 세력이 활발히 존재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삼국시대에 활동했던 해적의 실체, 그들의 기원과 활동 지역, 그리고 각국이 이들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고대 해상 질서: 바다도 전장이었다

삼국시대의 동해, 남해, 황해는 단순한 교통로가 아니라 군사적 요충지이자 해상 약탈의 대상이었습니다. 백제는 중국 및 왜(일본)과의 교역을 주도했고, 신라는 한반도 남동 해안을 기반으로 해상 방어력을 강화해 갔습니다. 이런 틈새를 타고 독립적인 해상 약탈 집단, 즉 고대 해적들이 활약하게 됩니다.

2. 백제 해적? 실은 민간 무장 선단

백제는 4~6세기 사이 해상무역 강국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무장된 민간 선단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백제 상선이지만, 일부는 외국 상선을 약탈하거나 일본 연안에서 약탈 행위를 저질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백제의 상선 중 일부는 외국 물자를 훔치고, 포로를 납치하여 가축과 바꾸는 일이 잦았다.” – 『일본서기』

백제가 이를 제재했다는 기록은 적은 반면, 이러한 세력이 백제 군대와 협력했다는 정황도 존재합니다. 즉, 국경 밖에서는 해적처럼 행동하고, 안에서는 ‘무역 전사’로 인정받는 이중적 존재였던 셈입니다.

3. 신라 연안의 해적 출몰과 왜구의 기원

5세기경, 신라 동해안 일대에는 “검은 돛의 배가 밤마다 마을을 습격한다”는 기록이 실록과 비문에 등장합니다. 이들은 오늘날의 울산, 포항, 강릉 일대에서 활동했으며, 식량과 금속을 약탈한 후 사라졌습니다.

이 세력은 후에 왜구와 연결되는 초기 해적의 원형으로 해석되기도 하며, 일부 사학자들은 이들을 해양 유민 + 무장 탈주자로 봅니다. 신라 정부는 군선을 조직해 이들을 토벌했으며, 군항 설치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4. 가야 해상 세력의 이중성

가야는 해상 교역에 능한 국가였지만, 고구려·신라·백제와의 충돌 속에서 ‘무역과 약탈’을 동시에 진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가야 선박이 백제 상선을 공격하고, 철을 약탈해 되팔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가야는 일본 열도와도 교류했는데, 일부 무장 해상 세력은 해적 행위와 무기 밀수도 함께 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는 가야의 외교 전략이 단순 무역이 아니라, 무력을 기반으로 한 ‘거친 교류’였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5. 고구려의 해상 경계와 ‘해상 척후병’

고구려는 주로 육지 중심의 국가였지만, 황해 연안을 중심으로 해상 경계선을 운영했습니다. 특히 압록강 하구~황해도 연안에는 군선 기지를 설치하고, 해상 침투를 방지하기 위해 ‘해상 척후병’을 운용했습니다.

이 척후병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해적 퇴치였으며, 외국 선박이 고구려 해역에 무단 접근할 경우 격퇴하거나 생포해 처형하기도 했습니다.

“왜의 배가 진입하자 척후병이 이를 포위하여 생포하고, 무기와 사람을 모두 몰수하였다.” – 『삼국사기』

6. 고대 해적은 누구였는가?

삼국시대 해적은 오늘날과 달리 특정 집단이 아닌, 여러 부류로 구성된 비정규 해상 세력입니다.

  • 무장 상인 – 무역을 빌미로 약탈을 겸한 민간 세력
  • 해양 유민 – 기근, 전쟁 등으로 바다로 내몰린 생존 세력
  • 탈주 군인 – 전장에서 이탈해 해상 약탈로 생계를 이어간 자들
  • 해외계 용병 – 왜, 중국계 해적들이 고용되기도 함

이들은 군사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때로는 삼국의 국익에 따라 ‘공식적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7. 해적의 몰락과 국가의 통제

6세기 후반, 삼국은 모두 해군력을 강화하며 해적에 대한 조직적인 통제를 시작합니다. 백제는 해군을 동원해 일본과의 해상 질서를 구축했고, 신라는 한강 유역 진출 이후 남해 일대를 장악하며 해상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가야의 멸망(562년)과 함께 독립적인 해상 세력은 급격히 사라졌고, 이후 해적은 ‘국가 반역자’ 혹은 ‘적국의 간첩’으로 간주되어 강력히 처벌되었습니다.


마무리 요약

  • 삼국시대에도 다양한 해상 해적 세력이 실재
  • 백제·신라·가야는 무역과 약탈의 경계에서 활동한 민간 선단 보유
  • 고구려는 군선을 활용해 해상 방어 및 해적 격퇴
  • 고대 해적은 상인, 유민, 탈주자 등 다양한 배경의 집단
  • 6세기 이후 국가 통제 강화로 대부분 해체되거나 흡수됨

삼국시대의 해적은 단순한 범죄 집단이 아니라, 국가 간 교류와 전쟁 사이에서 실리와 생존을 추구한 복합적 존재였습니다. 오늘날의 국제 해상 질서와 비교해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제공하는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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